고구려의 시작은 주몽이었다. 그는 한 사람이었으나, 한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자, 두 번째 왕이 된 이는 그저 주몽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지 않았다. 그는 떠돌아야 했고,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그의 이름은 유리왕(瑠璃王).
사람들은 흔히 강한 자만 기억한다. 그러나 강한 자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니다. 고구려의 왕이 된다는 것, 그것은 피로 쓰인 운명이었다.
버려진 자의 길
세상에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갖춘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제 것이었어야 할 것조차 빼앗긴 채 세상을 떠돈다. 유리는 후자였다.
그의 어머니, 예씨는 고구려의 왕이 된 주몽을 기다렸을 것이다. 부여의 땅에 남겨진 채, 언젠가는 자신과 아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으며. 그러나 주몽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네가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
그 길은 곧 유리의 운명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아버지가 있는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왕의 아들이라는 증거
고구려의 땅에 도착한 날, 유리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성벽은 높았고, 하늘은 탁 트여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 본 것은 차가운 눈빛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반겼을까? 아니다.
주몽은 그를 단번에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주몽 곁에는 이미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 비류와 온조. 그들은 어릴 때부터 왕자로 자라났고, 왕위를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리는 떠돌이였다. 그는 이곳에서 어떤 자격도 없었다.
"네가 왕의 아들이라면, 증명해 보아라."
그것이 주몽의 말이었다.
유리는 말없이 활을 들었다. 그의 손은 거칠었고,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가 증명할 것은 핏줄이 아니라, 힘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몇 해가 지나도 그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 되어야만 했다.
홀로 남은 왕
세월이 흘러 주몽은 세상을 떠났다.
왕좌는 유리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왕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고구려에서 이방인이었다.
유리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는 검을 들고, 직접 말을 탔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결국 떠나야 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수도를 버리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여전히 작고 약한 나라였다. 그는 새로운 수도를 찾아 나섰다. 더 넓은 땅, 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해서 그는 국내성(國內城) 을 세웠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 유리왕 그 자체였다.
끝없는 여정
그러나 왕의 길에는 끝이 없었다.
그는 한 나라를 세웠지만, 여전히 고구려는 불안했다. 북쪽에서는 부여가 여전히 강했고, 동쪽에서는 또 다른 부족들이 고구려를 넘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끊임없이 지켜야 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갔다.
그는 가끔 하늘을 보았다. 자신이 어릴 때 떠났던 그 길 위에,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묻고 싶었다.
"나는 제대로 된 왕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대답해 줄 이는 없었다.
그는 그저 길을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그가 남긴 것
유리왕은 화려한 전쟁을 치르지도 않았고, 이름을 드높인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무엇인지 보여준 자였다.
길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
그가 떠난 후에도 고구려는 계속 성장했다.
그는 떠돌이였지만, 끝내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