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명절, 추석과 거리의 사람들

  • 등록 2025.10.04 12: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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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오면 도시의 풍경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귀성 행렬로 붐비는 기차역과 고속도로, 정성껏 차린 음식과 함께 웃음소리가 오가는 집 안 풍경이다. 다른 하나는 도심의 어두운 골목, 지하철역 출입구, 쓸쓸히 놓여 있는 종이박스 위에 몸을 의탁한 노숙인의 그림자다. 모두가 집으로 향하는 시간,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기다리는 가족도 없다.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풍요와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풍요의 풍경 뒤편에서 우리는 늘 외면해온 빈자리와 마주해야 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달빛보다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명절을 맞이한다. 누군가는 고향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앞에서 남은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다. 이 간극은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덮어둔 구조적 모순이자,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만 수천 명의 노숙인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히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건강, 인간관계, 제도적 지원의 그물에서 동시에 이탈한 사람들이다. 명절이 되면 이 고립감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시간이, 노숙인들에게는 가장 외로운 시간이 된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상처를 더 깊게 파고드는 순간이다.

 

언론은 해마다 명절이면 ‘무료 급식소 풍경’을 짧게 보도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따뜻한 밥 한 끼, 임시 쉼터에서 나누는 떡국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밥상 위의 음식은 하루를 버티게 할 수 있지만, 다음 날 또다시 거리에 나서야 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추석의 따뜻한 마음이 단발성 행사로 그친다면, 그 온기는 금세 식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시선의 이중성이다. 추석에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면서도,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에게는 차가운 눈길을 보낸다. “저들은 일하지 않아서 그렇다”, “게으른 탓이다”라는 단순한 낙인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노숙이 개인의 게으름보다 구조적 불안정이 더 큰 원인인 것은 아닐까?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 주거 비용 상승, 가족 해체, 정신 건강 문제가 서로 얽혀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거리에서 명절을 보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

 

추석은 본래 나눔의 명절이었다. 풍성한 수확을 이웃과 나누고, 집 없는 이에게도 음식을 권하던 것이 한가위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 정신을 잊은 채, 풍요를 가족 내부로만 한정한다.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은 넘치지만, 길 건너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끼는 인색하다. 공동체적 연대가 약화된 사회에서 명절은 때로 배타적인 울타리로 변질된다.

 

노숙인의 문제를 추석 하루의 시혜적 이벤트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제도적 해결책으로 이어가야 한다. 안정된 임시 주거 공간, 자활을 돕는 일자리, 정신 건강 치료와 상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다운 존엄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명절 때만 반짝하는 관심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공동체가 연중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추석의 ‘나눔’은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추석날 거리를 지나는 시민이 노숙인에게 따뜻한 떡 한 조각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제도가 함께 움직이고, 사회 전체가 책임을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풍요롭다고 말하려면, 더 이상 누군가의 추석이 쓸쓸한 골목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추석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라는 더 큰 공동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가 외면한 그 빈자리에서, 공동체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풍요로운 달빛 아래에서 외로움이 깊어지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추석의 의미는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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