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이 끝난 자리에서, 청춘은 무엇을 배웠을까

  • 등록 2025.11.13 15:41:04
크게보기

 

한 해의 공기가 멈추는 날이 있다. 그날은 거리의 소음도 줄고, 카페의 웃음소리도 잠시 멎는다. 바로 수능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그날의 공기는 언제나 팽팽하다. 수험생은 숨을 고르고, 부모는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조용히 시험장을 바라본다. 시험이 끝나면 마치 겨울이 시작된 듯한 정적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환하게 웃고,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오래 앉아 있다. 그 순간, 한 세대의 시간이 흘러간다.

 

수능은 한 사람의 지식보다 인내를 시험한다. 새벽에 일어나 문제집을 펴고, 잠들기 직전까지 오답을 되새기던 날들. 그 모든 시간은 점수로만 환산되기에는 너무 인간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 모든 노력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정답을 맞혔는가 아닌가로 나뉘는 그 하루가, 지난 12년의 기억을 단정하게 잘라버린다. 그래서 수능은 언제나 공정하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이제 시험이 끝났다. 교문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오랜만에 세상을 바라본다. 하늘은 생각보다 푸르고, 바람은 차갑지만 상쾌하다. 그제야 알게 된다. 시험장 안에서 잊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친구의 얼굴, 가족의 목소리, 자신이 정말 좋아하던 일들. 오랜 시간 ‘합격’이라는 두 글자에 가려 있던 것들이 다시 빛을 찾는다.

 

하지만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의 정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시험이다. 수능은 ‘끝’이 아니라 ‘출발’의 이름이다. 대학에 합격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문제풀이보다 훨씬 어렵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수능을 인생의 첫 패배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좌절은 꼭 나쁜 것이 아니다.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모른다. 정답이 틀린 날, 우리는 처음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한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성장한다. 그러니 수능에서 얻은 점수가 아니라, 수능을 마친 지금의 표정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준다.

 

교육의 목적은 결국 점수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시험이 끝난 후에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진짜 합격자다. 인공지능이 모든 정보를 대신 정리해주는 세상에서, 진짜 공부란 ‘스스로 묻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야말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지금 이 순간, 전국의 수험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긴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기쁨에, 어떤 이는 아쉬움에, 또 어떤 이는 허무함에 잠겨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은 정직하다.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 시절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배웠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시험지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진짜 점수다.

 

세상은 여전히 경쟁으로 가득 차 있다. 다음 시험,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수능을 치른 오늘만큼은 잠시 멈춰도 좋다. 이 긴 여정의 한가운데서, 스스로를 안아주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 누군가의 점수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는 일이다.

 

수능은 결국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통과의례’다. 그러나 그 의식을 통해 우리는 배우게 된다. 인간은 숫자로만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수는 잠시지만, 배움은 평생 남는다. 그리고 인생의 시험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다시 배우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진짜 공부다.

 

시험이 끝난 자리에는 종이 냄새와 함께 묘한 여운이 남는다. 이제 교문 밖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오늘의 시험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쳤느냐고. 혹시 그 대답이 아직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인생의 성적표는 늘 뒤늦게 도착하니까. 중요한 건 그 기다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수능이 끝난 세대가 세상에 남겨야 할 가장 값진 배움이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Copyright @헤드라인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 경기,아53028 | 등록일 : 2021-10-07 | 제호명: 헤드라인 경제신문 | 주소 : 경기도 의정부시 평화로 216번길 13 발행 편집인 : 양세헌 | 전화번호 : 010-3292-7037 Copyright @헤드라인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