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은 때로 익숙한 소음 속에서 소리 없이 자라나는 식물 같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잎사귀는 햇살을 받고 바람을 흔들며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걸 거의 보지 못한다. 느끼지 못한다.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데도, 눈은 먼 곳을 바라보며 더 크고 화려한 무엇인가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소박한 식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서재의 의자처럼, 전철의 손잡이처럼 늘 곁에 있으나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것.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무엇을 확인하는가. 알림이 빗발치는 스마트폰? 혹은 어제의 연장선 같은 공허함? 당신의 하루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당신이 원했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나.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행복을 설계"하려 들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은 이런 걸 해야 행복할 것 같아’, ‘이걸 손에 쥐어야 만족스럽지 않겠어’ 같은 생각들. 계획은 좋다. 스케줄도 좋다. 그러나 계획된 행복은 언제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준비는 끝났는데 정작 주인공인 행복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무대 같다.
내가 듣던 이야기 중, 아무도 모르게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나무는 사람들 눈엔 크기도 변하지 않고, 꽃을 피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찾아가 조용히 흙을 쓰다듬고, 물을 들이켰다. 어느 날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쓸데없이 나무를 돌보는가?” 그가 답했다. “돌보며 사는 동안, 나는 내 체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가 돌본 건 나무였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었을까. 무엇을 돌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하루를 만지느냐가 문제였다.
행복은 종종 커다란 감정으로 오지 않는다. 구름 사이에 걸린 햇살처럼, 현실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작은 순간일 때가 많다. 기지개를 켤 때 들려오는 어깨 관절의 작은 소리,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정적, 엘리베이터 문이 ’딱’ 하고 열리며 맞이하는 공기. 이런 순간들 중에 당신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하루를 살아내는 게 아니라, 하루가 흘러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더 나은 상황? 더 많은 시간? 아니면 누군가 알아봐줄 인정? 물론 정당한 기대이다. 삶은 그런 꿈을 원동력 삼아 나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은 골인 지점의 리본이 아니라 "달리는 과정에서 바람결에 스치는 느낌"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묻자. 당신은 스스로에게 친절한가. '오늘도 잘 버텼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지적에 익숙하다. ‘아, 이건 못했지’, ‘이게 뭐야’, ‘그 사람은 잘하던데’. 그러나 그 안엔 이상하게도 자신을 향한 칭찬이 없다. 나를 위로해줄 손길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 열린 창문이 없다면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손을 뻗지 않는다면 접시도 들을 수 없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내리고 그 자리에 손을 얹는다. 누군가 이 페이지를 꾹 눌러 펴면서 읽었겠지,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의 손길이 남겨진 흔적. 거기엔 기억과 온기가 있다. 행복이란 어쩌면 그런 흔적의 조각들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웃었을 것이다. 한 아이는 친구에게 사탕을 나눠 주었을 테고, 누군가는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잘 먹었다”고 툭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잔잔한 물결처럼 이어지는 여운이 바로 일상의 기쁨 아닌가.
이쯤에서 묻고 싶다. 당신은 언제 가장 편안한가. 뜨거운 커피를 두 손에 감싸 쥘 때?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몸을 눕힐 때? 혹은 누군가에게 받은 친절함이 너무 고마워 짧게라도 감사 인사를 남겼을 때?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아무런 꾸밈없는 행복의 얼굴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행복은 "지금 당신이 놓친 작은 감정의 틈 사이"에 있다.
아무도 행복을 대신 느껴줄 수 없다. 누가 대신 웃어줄 수도 없고, 누가 대신 울어줄 수도 없다. 그래서 어렵고 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거창한 구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솜털 같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 낸 작은 기둥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둥은 이미 당신의 발밑에 놓여 있다.
그러니, 가끔씩은 당신이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도, 당신의 주변에는 누군가의 삶, 온기, 소리, 냄새, 빛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행복은 늘 당신 곁에서 시선을 맞추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이미 내 손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