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평범한 왕이 아니었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났지만,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무수리였다. 형들은 정통성을 가졌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대로 흐르지 않았다. 아버지 숙종은 그를 멀리했으나, 형 경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길이 열렸다. 1724년, 그는 조선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이 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붕당이 나뉘어 서로 싸웠고, 백성들은 굶주렸으며, 왕조의 질서는 흐트러져 있었다. 왕은 스스로를 다스려야 했고, 신하들을 다스려야 했으며, 결국 나라를 다스려야 했다. 영조는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선을 다듬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탕평책, 싸움을 멈추게 하다 조선은 붕당의 나라였다.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이 나뉘어 서로를 견제했고, 왕권은 그들의 싸움에 휘둘렸다. 영조가 왕이 되었을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고민했다. 누군가 한쪽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화합시켜야 하는가.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탕평책(蕩平策). 왕권을 강화하면서도, 당파 간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이었다. 노론과 소론을 균형 있게 등용했다. 당파 간 다툼을 줄이기 위해 탕
그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왕이 되어야만 했다. 조선의 왕좌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왕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광해군이 있었고, 그를 몰아낸 서인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왕이 필요했다. 1623년, 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은 폐위되었고, 새로운 왕이 세워졌다. 그의 이름은 능양군, 훗날의 인조였다. 그러나 왕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조선을 다스려야 했고, 무엇보다 조선의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가 걸어야 했던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반정으로 세운 왕, 그러나 불안한 왕좌 인조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니었다. 서인들이 만든 왕이었다. 광해군은 실리 외교를 펼쳤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서인들은 그것을 반역이라 보았다. 그들에게 조선은 명나라의 신하였고, 후금은 적이었다. 1623년, 서인들은 반정을 일으켰다. 광해군은 쫓겨났다. 그리고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문제는 왕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왕좌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명나라를 섬겨야 했다. 그것이 서인의 뜻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운명은 그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원하지 않은 왕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형이 있었다. 적자가 있었다. 그는 그저 한 명의 왕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이상하게 흐르기 마련이었다. 그의 형이 죽었고, 그는 남았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되었다. 조선의 역사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왕이 되는 순간부터 그는 싸워야 했다. 정치와 신하들과,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싸워야 했다. 광해군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끝내 그는 왕이었으나, 왕이 아니었다. 전란 속에서 왕이 되다 그의 삶은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고, 조선은 불타올랐다. 왕이었던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왕이 없는 조선, 백성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때, 광해군은 움직였다. 그는 어린 왕자였으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 피난을 떠난 선조를 대신해 전쟁을 수습해야 했다. 그는 명나라와의 외교를 이끌었고, 의병장들을 격려했다. 한양이 무너졌으나, 조선은 끝나지 않았다. 광해군은 조선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도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던 그가, 이제 왕이 되
나라를 세운 자가 있었다. 그리고 나라를 키운 자가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다듬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은 태조의 손에서 태어났고, 세종의 손에서 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제도가 많았고, 나라의 법은 명확하지 않았다. 왕이 혼자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었다. 신하들과 조정이 움직여야 했고, 나라를 다스리는 틀을 만들어야 했다. 그 일을 한 사람이 성종이었다. 왕이 되다 그는 왕이 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왕이 되었다. 1469년, 조선의 왕이었던 예종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젊은 왕이었고, 병이 깊었다.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예종의 어머니, 정희왕후는 결정을 내렸다. 예종의 조카이자, 세조의 손자였던 자을산군이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가 바로 성종이었다. 나이는 열여섯.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나라를 다스릴 경험도 없었고, 정치의 흐름을 읽을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에겐 신하들이 있었다.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성종의 조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교의 나라, 조선을 완성하다 성종은 조선을 다듬었다. 법을 정리하고, 제도를 정비했다. 세
아버지는 강했다. 나라를 세웠고, 왕권을 다졌다. 형제들은 피를 흘렸고, 조선은 칼 위에서 굳건해졌다. 그 피비린내 속에서 한 아이가 자랐다. 그는 검보다 책을 들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대신, 백성을 위해 길을 찾았다. 세종. 그는 조선의 네 번째 왕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왕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었다. 왕이 되기까지 그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 왕위를 이어받을 형이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다가왔다. 맏형 양녕대군은 왕이 되지 못했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왕좌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태종은 결단을 내렸다. 양녕을 폐하고, 세자 자리를 셋째 아들에게 주었다. 세종은 어릴 때부터 책을 사랑했다. 신하들과 논쟁을 즐겼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태종은 그를 지켜보았다. 나라를 다스릴 왕은 싸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지만, 또 백성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1418년, 세종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쉽사리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 태종은 그를 지켜보았고, 조용히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세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충신이라 불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냉혹한 권력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는 조선을 만든 이였다. 조선을 세운 것은 그의 아버지 이성계였으나, 조선을 지킨 것은 그였다. 칼을 들었고, 형제를 베었으며, 끝내 왕이 되었다. 그가 걷던 길은 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방원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집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그의 형제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졌고, 그는 그들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학문을 익혔고, 시를 읊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권력을 쥐고 싶었다. 조선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왕자의 난, 형제를 베다 조선이 막 세워졌을 때, 왕이 된 이는 그의 아버지 이성계였다. 그러나 왕이 된다는 것이 모든 것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고려의 기틀을 부수고 새 왕조를 세웠지만, 조선은 아직 불안정한 나라였다. 대신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 했고, 왕의 아들들 역시 저마다 왕좌를 노리고 있었다. 이방원은
안향, 고려에 유학을 심다 고려의 산천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땅 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전쟁이 있었고, 왕들이 바뀌었으며, 외세의 영향이 깊어졌다. 고려는 더 이상 고려만의 나라가 아니었고, 원나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한 사람은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는 무기가 아니라 책을 들었고, 힘이 아니라 도리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그는 고려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결국 그것이 학문과 사상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의 이름은 안향(安珦).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에 새로운 학문을 뿌리내린 사람이었고, 고려의 정신을 다시 세우려 한 사람이었다. 유학을 고려에 들이다 고려는 오랫동안 불교의 나라였다. 왕실은 불교를 숭배했고, 백성들도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갔다. 절이 세워지고, 스님들이 존경받았으며, 국가는 불교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안향은 다른 길을 보았다. 그는 유학(儒學)이 고려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였다. 유학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이승휴, 고려의 역사를 새기다 고려의 강물은 조용히 흘렀다. 그러나 그 강물 아래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었다. 왕들이 세상을 떠나고, 전쟁이 지나가고, 백성들의 삶이 바뀌어도 강물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을 붙잡고, 글로 남긴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이 아니었고, 장군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려의 역사를 지켜보았고, 그 역사를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이승휴.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사람이었고, 고려가 걸어온 길을 한 권의 책에 담아 후대에 전하려 한 사람이었다. 역사를 기록하다, 제왕운기 이승휴가 남긴 가장 위대한 것은 단 하나의 책이었다. 제왕운기. 그것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려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기록이었고, 고려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고려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원나라의 영향이 깊어졌고, 고려의 자주성이 위태로워졌다.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신하들은 원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때 이승휴는 고려가 누구인지, 고려가 어떤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를 다시 생각
정몽주, 고려의 마지막 충신 고려의 하늘은 무거웠다. 왕은 있었으나, 왕의 말은 힘을 잃고 있었다. 신하들은 갈라졌고, 나라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고려는 더 이상 고려답지 않았고,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고려를 떠나지 않았다. 고려가 무너져도, 그는 고려의 신하로 남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정몽주. 그는 학자였고, 정치가였으며,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이었다. 학문을 통해 나라를 꿈꾸다 정몽주는 학문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다. 그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붙잡으려 했다. 그는 성리학을 연구했다. 그것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였고,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였다. 그는 그것을 신념으로 삼았다. 그는 학문으로 고려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다. 왕이 흔들려도,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 있다면 고려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는 고려의 유학을 발전시켰고,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학문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는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고려를 지키려 했던 정치가 정몽주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
이성계, 고려를 넘어 조선을 열다 고려의 끝자락, 전쟁은 멈출 줄 몰랐다.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기회를 노렸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해안을 침탈했다. 원나라가 사라지자, 이제 명나라가 고려를 압박했다. 왕실은 흔들렸고, 신하들은 갈라졌다. 고려는 여전히 고려였으나, 그 고려를 유지할 힘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고려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려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고려를 지키는 길이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길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계(李成桂). 고려의 장군, 전쟁터에서 이름을 떨치다 이성계는 무장이었다. 말 위에서 싸웠고, 칼을 들고 고려를 지켰다. 고려가 흔들릴 때, 그가 있었고, 고려가 승리를 거둘 때, 그 또한 있었다.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여진족과의 전투에서였다. 여진족은 북쪽에서 고려의 국경을 위협했다. 고려는 국경을 지켜야 했고, 그 싸움에 이성계가 있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고, 적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고려의 군대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는 승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고려의 진짜 적은 바다 건너에서 왔다. 왜구가 고려의 해안을 쓸고 다녔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