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공기가 멈추는 날이 있다. 그날은 거리의 소음도 줄고, 카페의 웃음소리도 잠시 멎는다. 바로 수능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그날의 공기는 언제나 팽팽하다. 수험생은 숨을 고르고, 부모는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조용히 시험장을 바라본다. 시험이 끝나면 마치 겨울이 시작된 듯한 정적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환하게 웃고,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오래 앉아 있다. 그 순간, 한 세대의 시간이 흘러간다. 수능은 한 사람의 지식보다 인내를 시험한다. 새벽에 일어나 문제집을 펴고, 잠들기 직전까지 오답을 되새기던 날들. 그 모든 시간은 점수로만 환산되기에는 너무 인간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 모든 노력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정답을 맞혔는가 아닌가로 나뉘는 그 하루가, 지난 12년의 기억을 단정하게 잘라버린다. 그래서 수능은 언제나 공정하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이제 시험이 끝났다. 교문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오랜만에 세상을 바라본다. 하늘은 생각보다 푸르고, 바람은 차갑지만 상쾌하다. 그제야 알게 된다. 시험장 안에서 잊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친구의 얼굴, 가족의 목소리, 자신이 정말 좋아하던 일들.
내일은 수능시험 날이다. 매년 찾아오는 이 하루는 언제나 특별하다. 거리의 소음이 잦아들고, 도심의 공기가 유난히 맑아진다. 새벽의 버스 안에는 책을 손에 쥔 학생들이 앉아 있고, 부모들은 아침밥 대신 마음을 챙긴다. 온 나라가 한날한시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풍경, 그것이 바로 수능이다. 수능은 단지 한 과목의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월의 인내와 불안을 버텨온 ‘시간의 결과’다. 수험생이 펜을 쥐기까지 걸어온 길에는 새벽의 졸음, 수없이 지워진 연필 자국, 눈물 섞인 합격의 다짐이 있다. 내일 그들은 그 모든 시간을 한 장의 답안지로 정리한다. 마치 인생의 요약문을 쓰듯이. 많은 어른들이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수험생의 마음을 완전히 위로하긴 어렵다. 지금의 그들에게 수능은 단지 시험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다. 미래를 향한 문이 닫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문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어깨를 누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내일의 시험은 인생의 시작이지 결론이 아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되는 그들은 곧 세상의 다른 시험들과 마주할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노동시장의 시계가 느려지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60세 언저리에서 멈춘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데, 60세 이후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그렇게 ‘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정치권에서는 공약으로, 기업은 부담으로, 청년층은 불안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이 주제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생존감각이 충돌하는 문제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개정으로 정년 60세가 의무화된 지 이제 겨우 10년 남짓. 그사이 기대수명은 83세를 넘어섰고, 은퇴 이후의 삶은 20년이 넘는 새로운 생애주기가 됐다. 문제는 이 20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생계와 존엄이 걸린 시간이라는 것이다. 물가가 치솟고, 퇴직금과 연금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쪽의 논리는 단순하다. 늙었다고 해서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의료 기술과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된 지금, 60세는 더 이상 노년이 아니다. 오히려 경륜과 경험을 가진 인력의 조기 퇴출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낮춘다는
가을이 깊어지면 공기가 달라진다. 유난히 차가운 공기 속에 희미한 조명 아래서 울려 퍼지는 응원의 함성, 그리고 한순간에 터지는 환호와 침묵의 교차. 그것이 바로 가을 야구다. 정규 시즌 내내 묵묵히 뛰던 선수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던지고, 치고, 달리는 이 짧은 계절은 단지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선다. 가을 야구는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 노력의 계절을 지나, 운과 집중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찰나의 무대. 한순간의 영광과 아쉬움이 뒤엉킨 그곳에는 ‘끝’이 아닌 ‘기억’이 남는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지만, 가을 야구만큼은 숫자가 이길 수 없는 감정의 경기다. 시즌 동안 3할 타율을 유지한 타자가 가을만 되면 침묵하고, 마운드 위에서 흔들리던 투수가 가을에는 괴물처럼 변한다. 찬바람이 불면 누군가는 눈빛이 달라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너진다. 이 모든 변화는 계산되지 않는다. 그저 ‘가을의 공기’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전이자 운명의 장난이다. 가을 야구는 늘 이별을 품고 있다. 매년 이 무렵이면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본다. 은퇴를 선언하는 베테랑, 부상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선수, 그리고 올해도 우승 반지를 놓친 팬들의 허탈함까지. 승자가 한
서울의 한복판, 세운4구역이라 불리는 지역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래된 골목과 낡은 건물이 뒤섞인 그곳에, 서울시는 새로운 마천루를 세우겠다고 한다. 높이는 140미터 남짓, 바로 그 건너편에는 6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종묘가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재개발 구역이 아니다. 왕조의 제향이 이어졌던 유교문화의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공간이다. 그런데 최근 법원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종묘 인근의 높이 제한을 풀고,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보존’과 ‘개발’이라는 오랜 줄다리기가 또다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셈이다. 서울시는 말한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정비가 지연돼왔고, 재개발을 통해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한때 서울의 중심이었던 세운상가 일대는 산업과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공백처럼 남았다. 고층화는 새로운 인프라와 기업을 끌어들이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더 이상 낡은 건물을 보존만 하며 시간을 멈춰둘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 단체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종묘의 가치를 ‘공간의 완전성’에서 본다. 단순히 건물 하나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하늘, 경관, 공기까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