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유로, 금 등 가치가 안정적인 자산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출렁이는 자산과 달리, 1 USDT(테더)는 언제나 1달러 안팎의 가치를 유지한다. 이 안정성이야말로 변동성에 지친 투자자, 그리고 글로벌 결제·송금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가 경계를 넘어 단 몇 초 만에 송금이 가능하다. 국제 송금 수수료를 받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위협이지만, 중소 수출기업, 해외 근로자, 프리랜서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특히 은행 계좌가 없는 국가에서도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다면 디지털 달러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는 전통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의 경제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미국 달러는 오랫동안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달러’처럼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USDT, USDC 등은 신흥국에서 자국 통화 대신 가치 저장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경제 불안정 국가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 현금’이자 인플레이션 회피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안정성이라는 이름 뒤에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법정
백화점 명품관 앞에 길게 줄 서는 장면은 더 이상 소비의 전형을 설명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비 패턴은 뚜렷하게 변했다. 그들은 고가의 가방이나 시계를 사는 대신, 같은 금액을 들여 해외 여행을 다녀오거나, 유명 작가의 전시에 입장하거나,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택한다. 물건을 소유하는 만족감보다, ‘경험’을 통해 얻는 순간의 감정과 이를 기록·공유하는 과정에서 오는 만족이 훨씬 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 소비는 단순한 유흥의 문제가 아니다. SNS 시대, 경험은 곧 ‘콘텐츠’이고, 콘텐츠는 곧 개인의 브랜드다. MZ세대에게 ‘내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더 강력한 자기 표현 수단이 된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명품 가방을 꺼내 보이는 대신, “저번에 다녀온 아이슬란드 오로라 여행”이나 “3시간 줄 서서 들어간 미술 전시”를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인상적이다. 이 변화는 중고·렌탈 시장의 급성장과도 맞물린다. 소유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비싼 물건은 빌려 쓰거나, 필요할 때만 구입하고 곧 되파는 것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국내 최대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월간 이용자는
안경을 처음 쓰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멀리 보이는 간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나뭇가지 위 잎사귀의 결까지 보이던 그 놀라움. 그 전까지도 ‘잘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흐릿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다. 안경은 눈이 가진 한계를 보완해 주고, 왜곡 없이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안경이 언제나 진실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렌즈에 흠집이 나 있거나 색이 입혀져 있다면 세상은 또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언론도 그렇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은 대개 언론이 제공하는 기사, 화면, 자막 속에 있다. 그 창이 깨끗하다면 세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에 먼지가 끼거나, 의도적으로 색이 칠해져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흐릿한 시야에 오래 익숙해지면 스스로 그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경 없이 살아온 사람이 ‘나는 잘 보인다’고 착각하듯, 왜곡된 정보 속에 오래 머문 사람은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 이때는 오히려 또렷한 화면을 보여주면 ‘이상하다’고 반발하기도 한다. 눈이 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다. 좋은
2025년 8월 1일, 한국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코스피는 하루 새 3.88% 하락했고, 코스닥 역시 4% 넘게 떨어졌다. 숫자로는 하루짜리 조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장에 남은 여운은 단순한 낙폭 그 이상이었다. 하루 전 발표된 세제개편안이 불씨였다. 정부는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추고,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율을 상향 조정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형평성과 공정 과세 원칙, 그리고 고소득 금융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표방해온 기조이기도 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에 집중된 자산을 금융시장으로 유도하되, 그 안에서도 과세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을 독려하되, 과세 정의를 놓치지 않겠다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일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책 실험’이자, 자본시장과 조세정책 사이 균형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반응했다. 발표 직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1조 원 넘는 매물을 쏟아냈고, 환율은 1,400원을 돌파했다. 기관 투자자들도 뒤를 따랐고,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시적인 혼란과 불안이 확산됐다. 그 이유는 정책의 내용 자체라기보다는,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충분히 잠을 자고, 특별한 질병도 없는데도 늘 지친 듯한 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하고, 아무리 쉬어도 개운하지 않다는 말은 이제 익숙한 일상 언어가 되었다. 심지어 푹 자고 일어난 주말 아침에도 “오늘 너무 피곤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과연 이 피로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가리켜 ‘가짜 피로감(Fake Fatigue)’이라 부른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도 머리와 몸이 무거운 느낌, 이는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정서적 과부하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다. 가짜 피로감은 현대인의 일상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끝나는 하루, 수십 개의 채팅방과 알림, 끊임없이 밀려오는 영상과 정보, 타인의 삶이 끊임없이 업로드되는 SNS. 우리는 매 순간 비교당하고, 반응하고, 해석하고, 무엇보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곤두세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침’이라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게 바로 우리가 느끼는 ‘피곤함’이다.
최근 소비 트렌드의 키워드 중 하나는 ‘토핑경제(Topping Economy)’다. 이는 소비자가 단순히 완성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옵션과 요소를 조합해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는 흐름을 의미한다. 마치 마라탕이나 요거트를 주문할 때 원하는 재료를 선택하는 것처럼, 이제 소비자는 스스로 제품의 공동 설계자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화제를 모은 컴포즈커피의 ‘컴포즈콤보’를 들 수 있다. 고객이 기본 음료를 고른 뒤 시럽, 토핑, 휘핑크림, 사이즈 등 다양한 옵션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메뉴다. 이 서비스는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관련 바이럴 영상은 단 3일 만에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닌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하는 경험이 소비자들에게 강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토핑경제는 단순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넘겨주고, 그 선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자신이 고른 토핑이 한 스쿱의 평범한 아이스크림을 특별한 디저트로 만들어 주듯, 소비자는
8월 1일로 예정된 미국의 25% 관세 유예 종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번 협상은 단순히 세율을 조정하는 기술적 논의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 경제가 맞이할 산업 환경을 결정짓는 거대한 분수령이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철강·조선·배터리 등 한국의 수출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관세 유예 연장이 불발될 경우, 국내 기업의 수출 비용은 단기간에 폭증하고, 이는 곧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이번 협상의 최대 민감 분야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상태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배터리·내연기관차 부문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제도 및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연계된 규제까지 얽혀 있어, 이번 관세 협상은 단순히 수출 가격이 아닌 산업 전반의 투자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동차 부품사와 협력업체들은 한미 협상의 결과에 따라 향후 생산라인 재배치, 해외 공장 증설, 가격 정책 변경 등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자국 농가 보호
한때 붉은 운동복과 초록색 체육복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구슬치기와 달고나, 줄다리기 같은 ‘어린 시절 놀이’가 갑작스레 생존의 도구가 되었고, 그 안에서 인간은 본능과 욕망, 윤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강렬한 한 방, 바로 ‘오징어게임’ 시즌1이었다. 그 후속작인 시즌2가 부담스러운 어깨 위에서 고군분투했고, 이제 시즌3를 앞둔 지금, 사람들의 기대는 다시금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시청자는 단순한 ‘죽음의 향연’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다. 시즌1이 던졌던 충격, 시즌2가 유지하려 했던 긴장, 그 모든 것을 지나온 시청자들은 지금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 더는 잔혹한 게임의 규칙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우리가 시즌3에 바라는 것은, 그 잔혹함을 넘은 진짜 인간의 얼굴, 그 안의 감정과 질문이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시즌3 티저 예고편은 피보다 '정적'을 선택했다. 말 없는 시선, 깨진 유리창, 흔들리는 조명. 이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감정과 의미의 공간이다. 그리고 시청자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영리해졌다. 이들은 단순히 "누가 죽을까?"가 아니라, "왜 저 사람이 저런 선택을 했을까?"를 묻는다
“회사에 정은 없지만, 퇴사할 정성도 없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 문장은, 많은 MZ세대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출근하고, 맡은 일을 처리하고, 월급을 받고 있지만, 마음 한켠은 이미 떠나버렸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조직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가리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 부른다. 조용한 퇴사는 실제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가 기대하는 그 이상의 열정과 헌신'을 더 이상 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야근을 당연시하지 않고, 정시 퇴근을 원칙으로 삼고, 사적인 시간엔 일과 거리를 둔다. 슬랙이나 메신저 알림은 퇴근 후엔 꺼두고, 회식은 예의상 참석하지 않는다. 겉으론 조직에 충실해 보이지만, 실상은 '심리적 퇴사'에 가깝다. 이 같은 흐름을 기성세대는 종종 '무성의함'이나 '게으름'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MZ세대는 전혀 다른 시선을 갖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노동과 삶 사이의 건강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과거처럼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들에게 ‘일’은 생계 수단일 뿐, 정체성의 전부는
한때, K-컬처는 ‘돌풍’이었다. K-팝의 칼군무, K-드라마의 막장 스토리, 그리고 BTS라는 기적. 세계는 한류를 ‘센세이션’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지금의 K-컬처는 예전처럼 선명하지 않다. 오히려 흐릿하고, 천천히 스며든다. 이는 몰락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의 전략이다. 과거의 한류는 ‘한국다움’의 강조에 기반했다. 낯선 언어, 독특한 유머 코드, 과한 감정선조차도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의 K-컬처는 더 이상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세계적인 감각 안에 한국을 녹여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자. 더 이상 ‘오징어게임’처럼 분명한 문화적 충격을 주기보다, ‘마이데몬’이나 ‘종말의 바보’처럼 장르 안에서 조용히 한국을 침투시킨다. BTS 이후의 K-팝 그룹들 또한 비슷하다. 이들은 전통적인 한국 정체성보다는 글로벌 퍼포머로서 자신을 정의한다. 노래는 영어로, 안무는 미국식 자유로움으로, 그러나 그 안에 ‘훈련된 완성도’라는 한국의 강박이 배어있다. 이것이 바로 ‘그라데이션’이다. 전통적인 문화 확산이 강렬한 색채의 붓질이었다면, 지금의 K-컬처는 얇은 안개처럼, 여러 국가의 정서에 겹겹이 스며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