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작은 원룸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청년이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휴대폰을 켜면 부동산 뉴스가 쏟아진다. "아파트값 또 최고가", "주식시장 연일 급등", "비트코인 1억 원 돌파". 그러나 그의 통장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내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은 ‘벼락거지’라는 단어 하나에 산산이 부서졌다.
‘벼락거지’라는 표현은 원래 ‘벼락부자’의 반대말이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이가 있는 반면, 하루아침에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집값과 자산이 급등하는 동안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했고, 그 속도는 인간의 노동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전례 없는 폭등을 경험했다. 평범한 직장인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10억 원을 넘어가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라는 단어가 유행했고, 그조차도 늦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진입할 틈이 없었다.
이때 태어난 단어가 바로 ‘벼락거지’다. 노력은 그대로인데, 자산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순식간에 수억 원씩 벌어졌다.
벼락거지는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적 박탈감의 집약체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가 몇 년 먼저 아파트를 샀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자산가가 되어 버렸을 때, 인간은 불공정함을 느낀다. 그 불공정은 단순히 경제적 차이가 아니라, 인생의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같은 노력을 하는데, 왜 나는 뒤처지는가?"
이 질문이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기 위해선 ‘성실, 절약, 근면’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는 그 공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금리가 오르고 물가가 치솟는 시대, 저축은 의미를 잃었고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을 가진 사람만이 인플레이션의 파도 위를 건널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더 ‘투자’라는 단어에 매달린다.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청년들은 코인 시장에 뛰어들고,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에 진입하려 한다.
노동이 아닌 자산이 부를 결정하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벼락거지 현상은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첫째, 자산 가격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압도했다.
둘째,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기회의 차이’가 세대를 가른다.
셋째, 부의 세습 구조가 강화됐다. 부모 세대가 이미 집을 소유했는가 아닌가가 인생의 출발선을 결정한다.
결국 벼락거지는 단순히 청년 문제도, 투자 실패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설계된 게임판’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벼락거지라는 단어는 단순한 경제적 좌절을 넘어 심리적 피로감과 사회적 냉소를 확산시킨다.
노력으로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이 퍼지고, “어차피 늦었다”는 말이 세대의 언어가 된다.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며, 미래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이것이 바로 벼락거지 현상이 한국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국가가 부동산 중심의 부 축적 구조를 완화하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답이 없다.
금융 시장의 접근성을 높이고,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부동산=인생 성공’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산 불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다시 마련하지 못한다면, 벼락거지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하나의 세대 정체성이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은 벼락거지라는 이름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은 실패한 게 아니다. 단지, 너무 빨리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다.
이 사회가 다시 기회의 사다리를 세워줄 수 있을까, 아니면 ‘자산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라는 신분 사회로 고착될까.
벼락거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경고다.
부의 속도가 인간의 시간보다 앞서가 버린 시대,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초상이 바로 벼락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