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 새로운 하늘을 꿈꾸다
고려의 하늘은 흐려 있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왕은 있지만 힘이 없었다. 신하들은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옛것을 지켜야 한다 했고, 누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묘청이 서 있었다.
묘청은 새로운 하늘을 꿈꾸었다. 그는 단순한 승려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다. 고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너무 거대했고, 세상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서경 천도, 새로운 시대를 향한 외침
묘청은 고려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가 본 고려는 낡아 있었다. 개경은 이미 오래된 도시였다. 그곳에는 문벌귀족들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묘청은 말했다. 고려는 개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새로운 수도가 필요하다. 그는 서경(西京)을 바라보았다. 서경은 넓고, 북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땅이었다. 그는 왕에게 말했다.
"서경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새로운 고려를 만들어야 합니다."
왕은 흔들렸다. 인종은 약한 왕이었고, 귀족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묘청의 말은 매력적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고려는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왕에게 설득했다. 서경에 궁궐을 짓게 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빌었다.
황제가 되려 한 고려, 그러나 거부된 꿈
묘청은 고려가 강해지려면, 중국 송나라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려는 독립해야 했다. 그는 더 나아가 왕에게 말했다.
"고려 왕이 황제가 되어야 합니다."
왕은 놀랐다. 고려는 오랫동안 송나라를 섬기는 형식을 유지해 왔다. 그것이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묘청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는 고려가 오히려 송나라를 넘어 새로운 중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너무 앞서 있었다. 문벌귀족들은 묘청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왕도 결국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묘청의 꿈은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묘청의 난, 고려를 뒤흔들다
1135년, 묘청은 결단을 내렸다. 왕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직접 새로운 고려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왕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존재가 되었다. 서경에서 그는 고려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모였다.
그러나 고려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개경에는 김부식이 있었다. 그는 유교적 질서를 지키려 했다. 그는 왕의 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서경으로 향했다.
전쟁이 벌어졌다. 묘청의 군대는 용맹했으나, 고려의 공식 군대와 맞서기에는 부족했다. 서경은 포위되었고, 결국 함락되었다. 묘청은 죽었다. 그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묘청이 남긴 것들
그의 몸은 사라졌으나, 그의 뜻은 남았다.
서경 천도 운동. 고려가 새로운 길을 가려 했던 순간.
독립 국가로서의 고려. 왕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최초의 주장.
묘청의 난. 고려의 정치적 균형을 바꾸어 놓은 사건.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패배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후에도 계속 남았다. 고려는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끊임없이 개혁과 변화를 꿈꾸었다.
묘청은 반역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다시 평가되었다. 그가 바라본 고려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시대가 그를 따라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묘청을 혁명가로 기억한다. 그는 단순한 승려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던, 너무 앞서 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