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피터 대제: 유럽을 향한 창 러시아는 오랫동안 자신이 유럽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나라였다. 서쪽 국경을 넘어서면 독일, 폴란드, 스웨덴과 마주쳤지만, 삶의 방식은 유럽과 달랐다. 언어도, 법도, 복장도, 심지어 시간 감각도 달랐다. 그런 러시아에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유럽을 꿈꾸지 않았다. 유럽을 직접 수입하려 했다. 그 이름은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피터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문물에 매혹됐다. 하지만 단순히 궁정에서 유럽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위에 있으면서도 가명을 쓰고 유럽을 직접 돌아다녔다.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선소 인부로 위장 취업했고, 네덜란드에선 목수들과 함께 배를 만들었으며, 영국에선 군사 훈련까지 직접 참관했다. 단지 흥미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전체를 ‘다시 설계’하고자 했다. 1703년, 그는 진흙과 늪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그 도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이곳은 유럽을 향한 창이다.” 피터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럽을 향한 창은, 동시에 러시아인들의 등을 향한 칼날이 되었다. 그는 유럽
서막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인류사의 한복판까지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거꾸로 봐야 한다. 흔히들 유럽의 끝자락에 붙은 커다란 나라로 보지만, 실제로는 유럽이 러시아의 한 모서리에 끼워져 있는 것이다. 남한의 170배가 넘는 면적, 인간이 살기 힘든 혹한과 침묵의 땅. 이곳에서 제국은 태어났다. 흥미로운 건, 이 제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는 곧 정체성의 역사다. 그들은 한 번도 '러시아인답게'만 살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바이킹이었고, 그다음은 몽골의 속국이었다. 정교회를 받아들이면서는 비잔틴의 후계자라는 환상을 가졌고,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자 유럽인과 경쟁하려 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공산주의 인류'로 자신을 정의했으며, 오늘날 푸틴의 러시아는 또다시 제국의 망령을 꺼내들고 있다. 러시아는 마치 끊임없이 다른 옷을 갈아입는 배우 같다. 무대는 바뀌지 않는데, 주인공의 분장은 늘 달라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왜 러시아는 늘 제국이 되려 했는가?” “왜 러시아인들은 권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숭배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국가는 어디까지가 보호자이고 어디까지가 감시자인가?” 이
8. 제국의 꿈과 전쟁 – 대정~쇼와 초기의 군국주의 먼저 바람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바다에서 불던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땅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이었다.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를 흔들고, 나뭇잎 끝을 날카롭게 치며 하늘을 가르는 기세였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었다. 이번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은 크고, 뜨겁고, 위험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달렸다. 천황제 중심의 국가가 되었고, 교육은 충성을 가르쳤으며, 군대는 국가의 척추가 되었다. 유럽을 좇아 문명을 흡수하던 나라가, 이젠 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성공은 자신감을 낳았고, 그 자신감은 곧 제국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일본은 승리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가 서양 열강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승리보다 일본을 더 자극한 것은 승리 이후 얻은 ‘위신’이었다.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는 착각, 대륙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는 확신. 일본은 제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는 짧았다. 쇼와로 넘어가면서 일본은 점점 더 내부를 다잡았다. 언론은 검열되었고, 학교에서는 ‘황국신민’으로서의
5. 전란의 시대 – 전국시대와 삼대 영걸 먼지였다. 짧은 햇살 아래 떠오른 그것은 누군가의 발굽에서 튀어 오른 것이고, 또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산과 들이 전장의 외투를 입었고, 벚꽃보다 빨리 피고 더디게 지는 핏빛 바람이 불었다. 막부의 붕괴는 새로운 혼돈의 문을 열었다.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주인이라 부르며 검을 뽑았다. 누가 진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깃발 아래에서 싸웠고, 서로의 목을 걸고 전장을 건넜다. 이름 없는 농민들도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다. 그들은 쌀을 얻기 위해,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이름도 모르는 무사를 따라 목숨을 걸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이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다 노부나가. 그의 칼은 거칠었고, 그의 불은 모든 관습을 태웠다. 그는 절을 불태우고, 귀족을 무시했으며, 천황마저 자신의 말 위에 세웠다. 전통보다 속도, 의례보다 실리를 앞세운 그는, 마치 시대의 도끼처럼 묵은 질서를 쪼개기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정복자였다. 교토를 손에 넣고, 정적을 제거하며, 전국을 하나로 묶는 사슬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쥐기 전에 배신당했다. 혼노지에서, 가장 가
1. 서문 – 바다 너머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람이 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닷결이 찰랑이며 부드럽게 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바람은 오래된 조가비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웠고, 이름 없는 섬의 돌담 너머로 고요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다 위에 흩뿌려진 조각 같았다. 큰 대륙에서 조금 떨어진, 물비늘 아래 작은 군도의 세계. 이 섬나라는 대륙과는 다르게, 계절과 바람의 얼굴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리듬을 만들며 조용히 살아왔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은 니혼 혹은 닛폰, 해가 떠오르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 정착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한 번도 대륙처럼 거대하게 외쳐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람처럼, 물결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역사의 형상을 지워갔다. 조용한 저편에서, 외침보다 침묵이 더 무겁게 쌓인 땅. 일본이라는 이름은 바다 건너 중국에서 건너왔다. 당나라 시절, 한 사신이 보고 들은 바로, “해가 뜨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 했다. 그 말이 이 섬의 이름이 되었고, 그 후부터 그들은 스스로를 태양의 민족이라 믿기 시작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그 광휘를 품고 사는 자들. 지리적으로 일
12. 명 – 검은 벽돌과 붉은 용포의 찬란함 벽돌이 쌓였다. 검은색이었다. 그 위엔 사람의 이름도, 피도 없었다. 다만 질서만이 있었다. 주원장(朱元璋). 거지는 황제가 되었고, 구걸하던 손으로 칙령을 썼다. 그는 땅의 끝에서 올라와 하늘의 중심이 되었다. 명(明). 밝을 명. 해와 달이 함께 있는 글자. 그는 어둠의 시대를 걷어낸다는 의미로 그 이름을 택했다. 그러나 밝다는 것은 무엇이 어두운지를 알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명나라는 원을 부정하면서도 그 유산을 정교하게 재편했다. 관료제는 더 치밀해졌고, 조세 제도는 더 정교해졌다. 백성은 땅을 얻었고, 황제는 법 위에 섰다. 주원장은 법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을 믿었다. 수천 명의 대신이 숙청되었고, 공신들은 반역자로 몰렸다. 그는 역사를 두려워했고, 역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황제 중심의 독재적 제국을 설계했다. 삼사(三司)는 나뉘었고, 이십삼부(二十三部)는 정비되었으며, 감찰, 형벌, 세금까지 모든 것이 황제의 눈 아래 놓였다. 그 눈은 열려 있었지만, 입은 닫혀 있었다. 그의 손자는 일찍 죽었고, 그의 손자의 아들은 강했다. 영락제(永樂帝). 명나라의
6. 한제국 – 황제라는 이름의 불씨 불은 꺼졌지만, 재는 뜨거웠다. 진나라의 유산은 재로 남았다. 제도는 그대로였고, 길은 연결되어 있었으며, 글자와 법은 아직 손에 익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서웠다. 한 번의 황제는 너무 무거웠다. 다시 천하를 하나로 묶는다는 일은, 마치 죽음을 두 번 겪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진의 폭정에 반기를 든 자들, 천하의 이름 없는 장수들과 농민 출신의 병사들. 그들 사이에 두 인물이 있었다. 한 사람은 귀족의 후예로, 전략과 기품을 가진 유방(劉邦).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병사 출신으로, 강철처럼 휘어지지 않는 항우(項羽). 두 사람은 같은 전장에서 싸웠고, 같은 적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뒤, 적은 바뀌었다. 전쟁은 서로를 향했고, 유방은 기다렸고, 항우는 앞서 나갔다. 결국, 불처럼 타오르던 항우는 스스로를 태웠고, 유방은 재 위에 앉았다. 기원전 202년. 유방은 스스로를 한고조(漢高祖)라 칭하고, 한(漢)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진의 제도를 가져오되, 진의 폭력은 지우려 했다. 법가는 유지하되, 부드러운 겉옷을 입혔다. 그 겉옷의 이름이 바로 유학(儒學)이었다. 공자는 죽고 없었지만,
1. 서시(序詩) – 강물은 언제부터 물이었는가 말은 남는다. 피로 적고 불로 지운 말들. 어느 문명의 시작은 늘 전설로, 끝은 언제나 전쟁으로 쓰인다. 누군가는 신의 손에서 나라가 태어났다고 믿었고, 누군가는 벽돌 위의 기왓장처럼 그 나라가 허무하다고 웃었다. 그러나 강은 흘렀고, 흙은 사람을 키웠고, 시간은 무심히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강물은 언제부터 물이었는가? 하늘에서 떨어진 비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울음이었다. 굶주림과 욕망, 천명을 사칭한 권력자들의 명분이 땅을 파고, 그 물줄기가 되었다. 그 강 위에서 배를 띄운 것이 하나라면, 닻을 내린 것이 주나라였다. 그리고 칼을 빼든 이들은 수없이 그 물을 적셨다. 중국이라는 말은 넓지만, 넓다고 단순하지 않다. 그 속은 겹겹이 덧칠된 시간이며,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의지였다. 역사는 두꺼운 책이 아니다. 역사는 고개를 들고 바라본 하늘의 색이며, 말없이 걷던 행인의 뒷모습이다. 이 이야기는 그 뒤를 따라가 보는 짧은 산책이다. 어쩌면 발목을 잡는 긴 늪일지도 모른다. 이제, 시작해보자. ‘하’라는 이름의 나라가 과연 신화였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빨리 눈을 감았는지. 2. 하와 은 – 신화가
세상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무언가 끝난 뒤의 고요가 아니라,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정적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고, 세상은 단 한 개의 기둥 위에 올라섰다. 미국. 더 이상 경쟁자는 없었다. 총성이 멈추고, 이념의 벽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 시절, 경제는 빠르게 움직였다. 컴퓨터는 집 안으로 들어왔고, 인터넷은 사람들을 서로 묶어놓았다. 정보는 돈이 되었고, 속도는 미덕이 되었다. 사람들은 클릭으로 세상을 바꾸고, 화면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IT 기업은 새로운 산업의 제국이 되었고, 실리콘밸리는 21세기의 골드러시였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이름들이 세상을 움직였고, 그 이름들조차 더 빠르게 바뀌어갔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만큼 사람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도시는 더 복잡해졌고, 시골은 더 멀어졌으며, 빈부의 간격은 더 깊어졌다. 2001년 9월 11일. 그날 아침, 하늘은 맑았고, 거리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두 개의 비행기가 그 모든 일상을 찢어놓았다. 뉴욕의 심장이 무너졌고,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전 세계가 텔레비전 앞에서 숨을 멈췄다. 테러. 그 단어는
전쟁은 끝났지만, 세상은 평화롭지 않았다. 총성이 사라진 자리에 더 날카로운 침묵이 들어섰다. 연합은 해체되었고, 동맹은 어색한 악수가 되었으며, 지구는 조용히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미국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소련이 있었다. 그 사이의 공기는 무겁고, 불투명하고, 차가웠다. 사람들은 그것을 '냉전(冷戰)'이라 불렀다. 뜨겁지 않지만,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긴장. 전쟁이 아닌, 전쟁보다 긴 싸움. 미국은 자유를 말했고, 소련은 평등을 외쳤다. 그 말들 사이에 수백 개의 국경과 수십억의 사람이 놓여 있었다. 무기 경쟁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핵폭탄의 수는 숫자로 셀 수 있었지만, 그 공포는 셀 수 없었다. 미국은 수소폭탄을 만들었고, 소련도 곧 따라잡았다. 두 나라는 마치 하늘 끝에다 칼을 매달아 놓고 누가 먼저 내려칠지를 지켜보는 형국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멀고도 낯선 땅에서 미국의 청년들이 싸웠다. 그들은 지도를 펼치고 한반도의 이름을 배웠고, 그 겨울의 추위를 견뎠다. 북위 38도선 위에서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잠시 멈춰졌다. 그리고 쿠바, 그 작은 섬이 세계 전체를 흔들었다. 1962년, 미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