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국민당 정부 이주와 장제스 체제 — 전환의 시간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 일본은 항복했다. 대만은 반세기 만에 다시 새로운 이름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중화민국의 이름으로. 그러나 이 새로운 통치는 환영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식민지 억압이 끝나기를 바랐던 대만인들은, 또 다른 억압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당시 대륙의 국공 내전은 격렬하게 진행 중이었다. 국민당 정부는 일본 패망 직후 혼란 속에 대만 행정을 인수했다. 장제스 정권은 대만을 전후 복구와 반공의 거점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 접근은 대만 사회의 복잡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루어졌다. 국민당이 파견한 관료들은 종종 본토에서 부패와 무능으로 악명 높던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일본 식민 체제의 인프라를 장악하는 데 급급했고, 민생 문제는 뒷전이었다. 물가는 폭등했고, 통화 개혁은 실패했다. 시장에는 가짜 상품과 암거래가 판쳤다. 그 와중에 공공 자산은 사유화되었고, 국민당 관료들과 그 측근들은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대만인 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일본인보다 더 못한 지배자들이다.” 이런 말이 골목마다 돌았다. 그 분노는 곧 폭발했다. 1947년 2월 27일
4장. 정성공과 한족 이주 — 귀명항청과 새로운 충돌 1661년 봄, 거센 바람과 검은 파도를 뚫고 수백 척의 군선이 남중국해를 가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배마다 노쇠한 병사들과 갓 징발된 농민들, 식량과 무기가 실렸다. 그들의 목적지는 명확했다. 대만 — 잃어버린 이상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거점. 그들을 이끈 이는 정성공(鄭成功), 명나라 충신이었다. 명나라는 이미 북경에서 무너졌고, 남부의 마지막 저항도 꺼져가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단 하나였다 — 반청 복명(反清復明). 대만은 그 꿈을 위한 무대가 될 운명이었다. 정성공의 함대는 타이난 인근에 상륙했고, 네덜란드군은 젤란디아 성에서 결사 항전했다. 9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성문은 열렸다. 네덜란드 깃발은 내려오고, 정성공의 군대가 섬을 장악했다. 이로써 유럽 열강의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정성공의 이상과 현실은 곧 충돌했다. 그는 대만을 명나라의 임시 수도, 복명 운동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섬 전체에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고, 청조 관복을 금지하며, 중앙 집권적 군정을 수립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섬
1장. 서문 — 섬은 섬으로만 남지 않는다 아직 어둠이 덜 가신 새벽, 남쪽 항구에 서면 바람은 언제나 바다 쪽에서 밀려온다. 짙은 안개 속에서 선박의 윤곽이 아스라히 떠오르고, 철제 로프에 매달린 쇠고리가 차갑게 울린다. 항구 노동자들은 벌써 움직인다. 시간은 해안가 도시에서는 느리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 섬은, 그렇게 언제나 밖으로 향하는 몸짓으로 깨어났다. 돌아볼수록 역사는 바다와 더불어 만들어졌다. 육지의 깊은 숲보다, 바다의 깊고 검푸른 저편이 더 많은 이야기를 실어왔다. 누군가는 대만을 ‘섬’이라 부른다. 그러나 섬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고립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나중에 덧씌운 관념일 뿐, 이 작은 대지 위에는 늘 외부의 바람이 드나들었다. 항로는 언제나 열려 있었고, 어딘가에서 온 이들은 늘 이곳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다시 어딘가로 떠나갔다. 먼 옛날, 바람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별과 바다의 결을 따라 항해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산지 깊숙한 곳, 원주민 촌락에서 들려오는 노래 속에 숨어 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외부에서 온 더 크고 빠른 배들이 이 섬의 해안을 포위했고, 이름 모를 지도로 그려냈다.
8장 냉전: 얼음 속의 열기 1945년, 세계는 새로운 전쟁을 맞이했다. 이번엔 총소리도, 전선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핵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눈을 떴다. 이것이 바로 냉전이었다. 뜨거운 이념의 대결이 얼음처럼 조용히 진행된 전쟁. 소련은 이제 더 이상 혁명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반파시즘의 승리자’, ‘노동자의 낙원’, 그리고 ‘세계 질서의 또 다른 축’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축을 맞이한 상대는 미국이었다. 양국은 서로를 바라보며, 거울을 들이댔다. 그러나 그 거울 속엔 항상 왜곡된 자화상만 비췄다. 자신은 정의고, 상대는 악이었다. 냉전의 본질은 두려움이었다. 단순한 군사력의 대결이 아니라, 미래를 선점하려는 전쟁. 소련은 말한다. “우리는 인류의 진보를 대표한다.” 미국은 응수한다. “우리는 자유의 수호자다.” 이 말싸움은 곧, 로켓으로 이어졌다. 1957년, 소련은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린다. 이 작은 금속 공은 소련의 과학력, 체제의 우월성, 그리고 서구 세계에 대한 조용한 경고였다. 그 순간, 세계는 러시아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우주를 향해 손을 뻗는 존재가 되었음
4장 피터 대제: 유럽을 향한 창 러시아는 오랫동안 자신이 유럽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나라였다. 서쪽 국경을 넘어서면 독일, 폴란드, 스웨덴과 마주쳤지만, 삶의 방식은 유럽과 달랐다. 언어도, 법도, 복장도, 심지어 시간 감각도 달랐다. 그런 러시아에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유럽을 꿈꾸지 않았다. 유럽을 직접 수입하려 했다. 그 이름은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피터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문물에 매혹됐다. 하지만 단순히 궁정에서 유럽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위에 있으면서도 가명을 쓰고 유럽을 직접 돌아다녔다.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선소 인부로 위장 취업했고, 네덜란드에선 목수들과 함께 배를 만들었으며, 영국에선 군사 훈련까지 직접 참관했다. 단지 흥미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전체를 ‘다시 설계’하고자 했다. 1703년, 그는 진흙과 늪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그 도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이곳은 유럽을 향한 창이다.” 피터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럽을 향한 창은, 동시에 러시아인들의 등을 향한 칼날이 되었다. 그는 유럽
서막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인류사의 한복판까지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거꾸로 봐야 한다. 흔히들 유럽의 끝자락에 붙은 커다란 나라로 보지만, 실제로는 유럽이 러시아의 한 모서리에 끼워져 있는 것이다. 남한의 170배가 넘는 면적, 인간이 살기 힘든 혹한과 침묵의 땅. 이곳에서 제국은 태어났다. 흥미로운 건, 이 제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는 곧 정체성의 역사다. 그들은 한 번도 '러시아인답게'만 살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바이킹이었고, 그다음은 몽골의 속국이었다. 정교회를 받아들이면서는 비잔틴의 후계자라는 환상을 가졌고,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자 유럽인과 경쟁하려 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공산주의 인류'로 자신을 정의했으며, 오늘날 푸틴의 러시아는 또다시 제국의 망령을 꺼내들고 있다. 러시아는 마치 끊임없이 다른 옷을 갈아입는 배우 같다. 무대는 바뀌지 않는데, 주인공의 분장은 늘 달라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왜 러시아는 늘 제국이 되려 했는가?” “왜 러시아인들은 권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숭배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국가는 어디까지가 보호자이고 어디까지가 감시자인가?” 이
8. 제국의 꿈과 전쟁 – 대정~쇼와 초기의 군국주의 먼저 바람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바다에서 불던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땅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이었다.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를 흔들고, 나뭇잎 끝을 날카롭게 치며 하늘을 가르는 기세였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었다. 이번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은 크고, 뜨겁고, 위험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달렸다. 천황제 중심의 국가가 되었고, 교육은 충성을 가르쳤으며, 군대는 국가의 척추가 되었다. 유럽을 좇아 문명을 흡수하던 나라가, 이젠 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성공은 자신감을 낳았고, 그 자신감은 곧 제국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일본은 승리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가 서양 열강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승리보다 일본을 더 자극한 것은 승리 이후 얻은 ‘위신’이었다.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는 착각, 대륙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는 확신. 일본은 제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는 짧았다. 쇼와로 넘어가면서 일본은 점점 더 내부를 다잡았다. 언론은 검열되었고, 학교에서는 ‘황국신민’으로서의
5. 전란의 시대 – 전국시대와 삼대 영걸 먼지였다. 짧은 햇살 아래 떠오른 그것은 누군가의 발굽에서 튀어 오른 것이고, 또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산과 들이 전장의 외투를 입었고, 벚꽃보다 빨리 피고 더디게 지는 핏빛 바람이 불었다. 막부의 붕괴는 새로운 혼돈의 문을 열었다.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주인이라 부르며 검을 뽑았다. 누가 진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깃발 아래에서 싸웠고, 서로의 목을 걸고 전장을 건넜다. 이름 없는 농민들도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다. 그들은 쌀을 얻기 위해,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이름도 모르는 무사를 따라 목숨을 걸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이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다 노부나가. 그의 칼은 거칠었고, 그의 불은 모든 관습을 태웠다. 그는 절을 불태우고, 귀족을 무시했으며, 천황마저 자신의 말 위에 세웠다. 전통보다 속도, 의례보다 실리를 앞세운 그는, 마치 시대의 도끼처럼 묵은 질서를 쪼개기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정복자였다. 교토를 손에 넣고, 정적을 제거하며, 전국을 하나로 묶는 사슬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쥐기 전에 배신당했다. 혼노지에서, 가장 가
1. 서문 – 바다 너머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람이 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닷결이 찰랑이며 부드럽게 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바람은 오래된 조가비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웠고, 이름 없는 섬의 돌담 너머로 고요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다 위에 흩뿌려진 조각 같았다. 큰 대륙에서 조금 떨어진, 물비늘 아래 작은 군도의 세계. 이 섬나라는 대륙과는 다르게, 계절과 바람의 얼굴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리듬을 만들며 조용히 살아왔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은 니혼 혹은 닛폰, 해가 떠오르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 정착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한 번도 대륙처럼 거대하게 외쳐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람처럼, 물결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역사의 형상을 지워갔다. 조용한 저편에서, 외침보다 침묵이 더 무겁게 쌓인 땅. 일본이라는 이름은 바다 건너 중국에서 건너왔다. 당나라 시절, 한 사신이 보고 들은 바로, “해가 뜨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 했다. 그 말이 이 섬의 이름이 되었고, 그 후부터 그들은 스스로를 태양의 민족이라 믿기 시작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그 광휘를 품고 사는 자들. 지리적으로 일
12. 명 – 검은 벽돌과 붉은 용포의 찬란함 벽돌이 쌓였다. 검은색이었다. 그 위엔 사람의 이름도, 피도 없었다. 다만 질서만이 있었다. 주원장(朱元璋). 거지는 황제가 되었고, 구걸하던 손으로 칙령을 썼다. 그는 땅의 끝에서 올라와 하늘의 중심이 되었다. 명(明). 밝을 명. 해와 달이 함께 있는 글자. 그는 어둠의 시대를 걷어낸다는 의미로 그 이름을 택했다. 그러나 밝다는 것은 무엇이 어두운지를 알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명나라는 원을 부정하면서도 그 유산을 정교하게 재편했다. 관료제는 더 치밀해졌고, 조세 제도는 더 정교해졌다. 백성은 땅을 얻었고, 황제는 법 위에 섰다. 주원장은 법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을 믿었다. 수천 명의 대신이 숙청되었고, 공신들은 반역자로 몰렸다. 그는 역사를 두려워했고, 역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황제 중심의 독재적 제국을 설계했다. 삼사(三司)는 나뉘었고, 이십삼부(二十三部)는 정비되었으며, 감찰, 형벌, 세금까지 모든 것이 황제의 눈 아래 놓였다. 그 눈은 열려 있었지만, 입은 닫혀 있었다. 그의 손자는 일찍 죽었고, 그의 손자의 아들은 강했다. 영락제(永樂帝). 명나라의